‘응용윤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문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서구 과학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였으며, 산업화는 대량생산을 통해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환경과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이제 오염의 수준을 넘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좁아진 야생동물이 도시에 출몰하여 소동을 피우는가하면, 대량생산체제에서 비롯되는 공해물질의 과도한 배출은 지구 온난화나 산성비, 엘리뇨 현상 등의 이상기후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입장의 충돌이 발생한다. 하나는 환경문제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편익을 위한 개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개발보다도, 삶의 위기로 다가온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 입장이다. 어떤 입장을 택할 것인가는 개인의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어느 입장을 택하든 간에 인간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환경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하며, 환경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좁게는 ‘어떤 방법이 되어야 하는 가’에서, 넓게는 ‘어떤 가치관적 변화를 요구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편리와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다. 그 탐욕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서구의 인간 중심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기계론, 환원론에 입각한 과학을 이용해 실현되어 왔다. 따라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은 가치관적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불교의 생태 윤리로의 전환이다.
인간과 모든 존재는 연기적 관계로 상호 의전하고 있으며, 인간은 다른 존재와 동등한 한 생명체로서 생태계의 일부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은 인간의 지배 대상이나 소유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소속시키는 하나의 유기체로써 외경심의 대상이 된다. 다른 존재도 인간의 발전을 위해 파괴될 수 있는 생명이 아니며, 다른 존재의 생존권 역시 인간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 숲이 파괴되고 강과 대기가 오염되며 동물들이 몰살당하고 나면 남는 것은 결국 인간 삶의 종말과 치열한 생존 경쟁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연기적 관계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자비의 마음과 불살생을 실천할 것을 말한다. 또한 인간의 과도한 탐욕을 버리고 지나친 사치와 소비를 자제할 것을 강조한다. 이런 삶의 방식은 우리와 다른 존재의 생존권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들의 삶에 대한 권리까지 보장해준다.
단 이것은 환경 보호를 위해 인간의 편익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과 다른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생명은 동등하므로 아픈 사람을 살리기 위해 풀뿌리를 약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풀의 생명을 아끼고 불살생의 마음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므로 인간을 살리기 위해 풀을 희생하여야 한다. 상호 연결되어 있지만 그 중 인간이 연기적 관계와 자비의 마음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을 위한 발전이나 환경보호를 위한 인간 욕구의 절제는 모두 극단일 뿐이며 불교적 생태 윤리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인간의 편익을 추구하되 다른 존재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중간 레벨의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실천적 의미의 중도가 될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연기적 관계의 이해를 바탕으로 생태계 비파괴를 위한 불살생의 계율, 6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