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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태문제

세상이 점점 개방화되어가고 동시에 성에 대한 견해도 예전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 되어가면서 원치 않는 임신에 의한 낙태가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실제로 낙태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점점 더 어려지고 있으며 낙태 시술을 하는 횟수도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한 실정이다.

 

낙태는 다른 말로 임신중절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임신을 중간에 중단시켜서 태아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도중에 죽어버리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크게 고의적 낙태와 넓은 개념의 치료차원의 유산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고의적 낙태는 동의된 행위의 결과로써, 또는 반대로 성폭행의 동의되지 않은 결과로써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생긴 태아를 고의성을 가지고 없애버리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치료차원의 유산인 경우 부모가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고 검사 결과 그 질환이 태아에게 유전된 경우, 또는 어머니의 건강이 매우 나빠 임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경우 어머니의 생명까지 보장하지 못할 경우에 할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낙태의 문제는 현대 사회 뿐 만 아니라 옛날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언급된다. 대부분은 혼외정사를 숨기기 위해서였거나, 첩들 사이의 가정불화를 없애기 위해, 또는 재산 상속문제가 개입되어 낙태를 자행하게 되었는데 주로 심령술사들이나 주술사들에게 부탁해서 종교적인 방법으로 유산을 시켰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이 낙태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불교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것, 즉 인간존재의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 이 계율의 의미는 비구가 의도적으로 그것이 개미처럼 작고 하잘 것 없는 것일 지라도 살아있는 것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되고 그것은 유산과도 같은 것이며 생명을 빼앗았을 경우 더 이상은 붓다의 제자가 아니라고 하는 대목에서 알 수가 있다.

 

여기서 불교에서 말하는 생명의 개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과학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후 20주정도 후부터 생명으로 인정을 하지만 불교에서는 부모와의 인연 관계를 맺는 그 순간부터, 즉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정신이 최초로 작동하는 순간부터 생명으로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불교적 관점으로는 수정이 된 후 부터는 생명으로 낙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벌인 것이다.

 

하지만 임신중절 중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경우인 치료차원의 유산인 경우, 비록 잉태된 생명을 인위적으로 없애는 것은 커다란 죄악이지만, 어머니의 생명과 새로 잉태된 생명 이 둘을 놓고 보았을 때 둘을 완전히 같은 생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우위를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인다.

 

불교에서는 살해에 대해 5가지 조건이 갖추어 질 경우를 들어서 설명한다. 그 첫째가 살해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어야 하고 둘째 살해자가 생명을 죽이는 걸 알고 있어야 하며, 셋째 살해자가 죽일 의도를 가지고 있고, 넷째 죽이는 노력을 하여 다섯째 죽임이 생겼을 때 그것을 살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낙태의 행위에 대응시켜 보면, 첫째는 살해되는 것이 태아로 생명을 가진 것이고 둘째 부모가 아는 상태에서 낙태가 자행되며, 셋째 부모의 동의를 얻고 그 의지에 의해 낙태가 이뤄지고, 낙태의 노력을 하여 결국 태아가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낙태는 불교적 관점에서 살해 행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살인의 또 다른 얼굴인 낙태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미혼 부모들에게 생명과 생명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태와 임신의 의미를 정확히 숙지시키고 올바른 몸 관리를 유도해 냄으로써 미혼 부모들의 의식전환을 이루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임신중절 상황 예방과 관련 절차 규정 강화, 사회적 비용의 창출과 탁아 시설의 확충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존중문화를 확산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생명을 소중함을 깨닫고 서로 책임 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한다면 낙태문제를 조금씩은 줄여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불교의 윤리적 관점에서의 낙태문제

 

불교의 철학적 입장은 우주의 근본 이치이자, 존재하는 다르마의 세계인 법계를 성립시키는 원리 혹은 성격인 연기성(緣起性)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생명체에 대한 논의는 생명이 시작되는 정(精, 정자)과 혈(血, 난자)과 식(識, 간다바) 세 조건의 상호의 존성 위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불교는 인위적인 살생을 금지하고 있으며, 아울러 임신중절(낙태)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율권이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혜와 자비의 두 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불교 역시 임신중절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 여부의 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임신중절을 피 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히 엄존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찬성론과 반대론 및 절충적 입장을 등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낙태에는 고의적 낙태와 비고의적 낙태가 있다. 먼저 고의적 낙태에 대한 불교의 관점을 알아보자. 『율장』에서는 생명을 지니고 있는 태아의 인공적인 유산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붓다는 만일 ‘의도적으로’ 인간 존재에게서 생명을 빼앗는 승려는 더 이상 붓다의 제자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번 가루가 된 둥근 바위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없듯이 의도적으로 생명을 빼앗는 일은 살아있는 동안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율장』은 태아가 수태를 통해 이미 인간 존재로 생겨나 있으며, 수태 순간 이미 인간은 생명을 지닌 존엄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 존재는 정신이 발생하는 최초의 순간 속에서 최초의 의식 표현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죽음 사이의 간격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태아는 이미 하나의 생명체이자 존재론적 지위를 갖추고 있으며 아울러 도덕적 지위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아는 이미 생명을 가진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이므로 함부로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고의적 낙태는 태아를 그냥 놔 둘 경우 어머니가 위험해 질 때 치료 차원의 유산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암암리에 소통되고 있는 몇몇 담론에서는 낙태에 대해 예외 조항을 인정하는 풍토가 만연해 잇다. 즉 처음부터 인공유산을 하려는 ‘의도’없이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낙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조건 속에서 예외의 조항을 인정하려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법률의 경우는 어머니의 신체 건강을 위협할 때/ 엄마의 죽음에 이를 수 있을 때 낙태를 허용한다. 그러나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예외를 인정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제 1계인 불살생계의 지계에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의 신체 건강을 위협할 때 낙태를 허용 하는 것은 정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당방위를 위해 살인하는 경우와 같이 일정하게 얘기하기 어렵지만 살인은 살인이라는 것이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명은 신비한 것이며 아무도 위해를 가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먼저 공유해야한다. 생명의 신비를 두고 특정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상의성에 의한 태어난 태아가 성인과 동일한 인간 존재임을 숙지 시켜감으로써 낙태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이해시켜 나가도록 한다. 아울러 불가피하게 임신중절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환기 시켜 낙태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한다. 그리고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시켜 올바른 피임법과 긍정적 입양제에 대한 인식의 전회를 통해 인공 임신중절을 막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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